시향

그 비구니가 나를 훔쳤다

아굴라야 2012. 3. 9. 12:40

「그 비구니가 나를 훔쳤다」 
 
 
 
 
정류장 노파 몇이 
솜털 가시지 않은 비구니에게  
들릴 듯 말 듯 겸연쩍은 말을 던졌다 
간 말은 돌아오지 않았다 
어색한 미소 
푸르스름한 머리는 봄동 같은 모자에 숨겨지고 
수행자를 표시하려는 의도 
보이지 않았다 
상처가 깊어서 싸맨 곳 있을 텐데 
작은 얼굴에 침묵만 있을 뿐  
내색하지 않는 처녀 
정갈한 회색 승복 속 상큼함이 
뽀얗게 비치는데 
털어버릴 것 많은 독한 어금니는  
입술 뒤 숨겼을까 
아직 털이 살아 있는, 부끄러워 함초롬한 털신을 신고 
어디를 조용히 가실까 
 
버스가 떠나자 
긴 여운이 산 그림자처럼 무거워졌다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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